[칼럼] 尹에게서 느껴지는 필리핀 기시감...
[신동아방송=조도환 논설위원] 스페인과 미국, 일본의 식민지배를 거친 필리핀은 미군이 떠나기 전까지는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잘 사는 나라로 분류됐었다.
필리핀 독립을 위해 항일 무장 투쟁도 했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는 1965년 취임 초기에는 친미-반공 일변도였던 필리핀 외교노선을 수정, 소련 등 공산 국가들과도 수교를 맺고,
베트남 전쟁에 군대를 보내는 등 미국과 관계는 지속하면서 경공업 육성으로 경제도 호황을 누리며 사회문제들도 어느정도 해결되는 듯 보였으나,
1969년 재선 이후 계엄령을 선포하고 언론을 통제하고, 반공을 핑계로 야당 인사들을 탄압하고, 민다나오 섬 무슬림 토벌작전을 벌이고, 부인 이멜다와 장남 봉봉과 친인척, 지인들에게 요직을 맡기고 축재한 재산을 해외로 빼돌리기 시작하면서 필리핀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같은 시기 필리핀 곳곳에서 공산당이 조직한 ‘신인민군(NPA)’과 '모로 이슬람 민족해방전선(MNLF)' 등 무장세력들이 봉기하면서 반 마르코스 투쟁을 전개하자, 정부군이 총동원되면서 필리핀은 실질적인 전시체제로 접어들고,
이 당시 이멜다는 계엄령 선포기간 동안 보건복지부 장관직과 마닐라 시장직을 지내면서, 어느 누구 눈치도 보지 않고 필리핀 국가재정을 횡령하고 과시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쓸모없는 사치성 사업을 벌여서 필리핀의 경제를 망치기 시작하는데,
훗날 이멜다가 남편 마르코스와 함께 하와이로 망명을 떠났을 때 이멜다가 살던 말라카냥궁 지하에는 가로 21m, 세로 21m나 되는 커다란 방에서 발견된 이멜다의 사치품이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고,
당시 대통령궁을 방문한 영국 사진기자 알렉스 보위는, “대통령궁 지하의 이멜다 옷장 속에 쌓여 있는 세계 초일류 유명 디자이너들이 디자인한 최고급 의상과 구두, 핸드백, 그리고 장신구들을 보고 입을 다물 수 없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1986년 마르코스가 실각하자 글로리아 아로요, 베니그노 아키노 3세 등이 대통령직을 거치며 민주주의가 점차 정착되고 경제성장도 차차 진행됐으나,
마르코스 시절부터 망가트린 도로와 상하수, 전기 등 기본 인프라 개선에 쓸 재정이 부족하고,
악화된 치안과 내전, 정계에 만연한 부정부패와 몇몇 가문의 정치 독점은 권력층과 빈곤층이라는 극단적 계층갈등으로 필리핀 발전에 장애가 되고 있으며,
같은 시기 민다나오를 기점으로 한 이슬람 무장단체가 분리독립을 외치며 납치, 유괴 등 온갖 테러로 정부를 위협하는 등, 마르코스가 탄압했던 이슬람의 반격과 이멜다가 망가트린 필리핀 교육과 경제의 악순환은 지금도 계속되는 중이다.
1억이 넘는 인구와 풍부한 천연자원을 갖고 있는 나라가 마르코스-이멜다 대통령 부부에게 철저히 망가진 것으로, 이자들은 권력 유지를 위해 우민정책까지 쓴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었다.
R&D 예산, 장병 예산, 고교 무상교육 예산, 의료비 인상에 청년, 복지 예산 등 예산을 전반적으로 삭감하는 중에 구달 행사, 은갈치 행사 등에 수십억 세금을 사용하는 등,
국민 무서운 줄 모르고 세금을 쌈짓돈 쓰듯 쓰는 자들이 권력을 잡으면 절차적 민주주의는 무너지게 된다.
공공부분 민영화와 수의계약, 쓸데없는 행사와 해외여행에 세금을 흥청망청,
조작이 들통나자 위기를 느꼈는지 전쟁 설 솔솔 흘리고, 살상무기 지원 가능성 언급하며 전쟁 불씨를 집안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으름장에 정적제거에 혈안 된 모습은,
나라는 망가져도 권력을 놓지 않겠다는 독재자의 전형으로 필리핀을 권력층인 부유층과 극빈층의 두 계층으로 나눈,
중간층을 삭제한 부인과 권력 나눠 쓰던 필리핀 대통령 방식이다.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어선 안 된다.
[신동아방송=조도환 논설위원] 스페인과 미국, 일본의 식민지배를 거친 필리핀은 미군이 떠나기 전까지는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잘 사는 나라로 분류됐었다.
필리핀 독립을 위해 항일 무장 투쟁도 했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는 1965년 취임 초기에는 친미-반공 일변도였던 필리핀 외교노선을 수정, 소련 등 공산 국가들과도 수교를 맺고,
베트남 전쟁에 군대를 보내는 등 미국과 관계는 지속하면서 경공업 육성으로 경제도 호황을 누리며 사회문제들도 어느정도 해결되는 듯 보였으나,
1969년 재선 이후 계엄령을 선포하고 언론을 통제하고, 반공을 핑계로 야당 인사들을 탄압하고, 민다나오 섬 무슬림 토벌작전을 벌이고, 부인 이멜다와 장남 봉봉과 친인척, 지인들에게 요직을 맡기고 축재한 재산을 해외로 빼돌리기 시작하면서 필리핀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같은 시기 필리핀 곳곳에서 공산당이 조직한 ‘신인민군(NPA)’과 '모로 이슬람 민족해방전선(MNLF)' 등 무장세력들이 봉기하면서 반 마르코스 투쟁을 전개하자, 정부군이 총동원되면서 필리핀은 실질적인 전시체제로 접어들고,
이 당시 이멜다는 계엄령 선포기간 동안 보건복지부 장관직과 마닐라 시장직을 지내면서, 어느 누구 눈치도 보지 않고 필리핀 국가재정을 횡령하고 과시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쓸모없는 사치성 사업을 벌여서 필리핀의 경제를 망치기 시작하는데,
훗날 이멜다가 남편 마르코스와 함께 하와이로 망명을 떠났을 때 이멜다가 살던 말라카냥궁 지하에는 가로 21m, 세로 21m나 되는 커다란 방에서 발견된 이멜다의 사치품이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고,
당시 대통령궁을 방문한 영국 사진기자 알렉스 보위는, “대통령궁 지하의 이멜다 옷장 속에 쌓여 있는 세계 초일류 유명 디자이너들이 디자인한 최고급 의상과 구두, 핸드백, 그리고 장신구들을 보고 입을 다물 수 없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1986년 마르코스가 실각하자 글로리아 아로요, 베니그노 아키노 3세 등이 대통령직을 거치며 민주주의가 점차 정착되고 경제성장도 차차 진행됐으나,
마르코스 시절부터 망가트린 도로와 상하수, 전기 등 기본 인프라 개선에 쓸 재정이 부족하고,
악화된 치안과 내전, 정계에 만연한 부정부패와 몇몇 가문의 정치 독점은 권력층과 빈곤층이라는 극단적 계층갈등으로 필리핀 발전에 장애가 되고 있으며,
같은 시기 민다나오를 기점으로 한 이슬람 무장단체가 분리독립을 외치며 납치, 유괴 등 온갖 테러로 정부를 위협하는 등, 마르코스가 탄압했던 이슬람의 반격과 이멜다가 망가트린 필리핀 교육과 경제의 악순환은 지금도 계속되는 중이다.
1억이 넘는 인구와 풍부한 천연자원을 갖고 있는 나라가 마르코스-이멜다 대통령 부부에게 철저히 망가진 것으로, 이자들은 권력 유지를 위해 우민정책까지 쓴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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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 예산, 장병 예산, 고교 무상교육 예산, 의료비 인상에 청년, 복지 예산 등 예산을 전반적으로 삭감하는 중에 구달 행사, 은갈치 행사 등에 수십억 세금을 사용하는 등,
국민 무서운 줄 모르고 세금을 쌈짓돈 쓰듯 쓰는 자들이 권력을 잡으면 절차적 민주주의는 무너지게 된다.
공공부분 민영화와 수의계약, 쓸데없는 행사와 해외여행에 세금을 흥청망청,
조작이 들통나자 위기를 느꼈는지 전쟁 설 솔솔 흘리고, 살상무기 지원 가능성 언급하며 전쟁 불씨를 집안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으름장에 정적제거에 혈안 된 모습은,
나라는 망가져도 권력을 놓지 않겠다는 독재자의 전형으로 필리핀을 권력층인 부유층과 극빈층의 두 계층으로 나눈,
중간층을 삭제한 부인과 권력 나눠 쓰던 필리핀 대통령 방식이다.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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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도환 논설위원 smspd1@naver.com


2026.09.30(수) 0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