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 열쇠를 복사해 줄테니 강당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계획을 세우라는 내 말에 아이들은“저희들이 열쇠 관리 잘하고요. 어지럽히는 아이들은 일주일간 강당을 쓰지 못하도록 하겠습니다”고 답변했다.
슬펐다. 이 아이들에게는 통제와 엄격한 규칙, 그리고 이를 지키지 않았을 때 주어지는 벌칙과 체벌의 문화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우리의 학생자치활동이 이랬던 것이다. (부안줄포초 오재승 교사)
“국어책 펴!” “수학수업 준비해라.” 할 때마다 아이들이 “아, 수업시간이야” 라는 한숨 섞인 말을 내뱉을 때마다 나 자신조차도 답답함을 느끼며 교과서 진도에 맞추어 수업을 했던 것 같다. 빽빽이 수업하고 열심히 설명해주는 교사가 성실한 교사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정확한 시점은 모르겠지만 동료선생님들과 혁신학교를 준비하고 연수를 들으면서 조금씩 달라진 것 같다. 아이들의 마음을 바라보는 여유와 교사로서 어떤 신념같은 것들이 나를 움직이기 시작한 것 같다. (부안 줄포초 김동화 교사)
혁신학교가 교사들을 바꾸고 있다. 올해 3월 전라북도교육청으로부터 혁신학교로 지정된 후 1학기가 지난 부안 줄포초교 교사들의 생생한 체험담을 통해 혁신학교 교사들의 삶을 들어다 봤다.
부안 줄포초교는 전교생 73명의 작은 농촌학교다. 혁신학교로 지정된 후 교육과정, 수업, 학부모 참여 등 전 분야에서 상당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당초 이 학교 교사들은 혁신학교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박성철 교사는“처음 혁신이라는 단어를 듣게 되었을 때 솔직히 맘에 들지 않았다. 이건 또 뭔가? 또 어떤 일을 줘서 교사를 힘들게 하려고 하는가?”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러나 박성철 교사는 쳇바퀴 돌듯 돌아가는 교실의 일상에 지치고, 아이들에게 지치고, 업무에 지쳐 있었고,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단다. 특히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보는 수업 등 혁신학교 철학을 접하고, 마음 맞는 교사들이 모여 책을 같이 읽고 토론하고, 연수도 찾아가면서 힘을 얻기 시작했다고.
줄포초등학교가 첫 발령지인 특수학급을 맡고 있는 이아연 교사도 막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줄포초등학교에 처음 발령 받게 되어 혁신학교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굉장히 막막했어요. 혁신학교의 개념이나 교육활동을 하는지 몰랐죠. 특히 특수교사인 나에게 있어서 혁신학교의 커리큘럼이 나의 아이에게 어떠한 영향을 줄지도 걱정되었어요”고 말한다.
줄포초등학교 교사들은 2012년말 겨울방학을 활용해 각종 연수와 토론모임을 활발히 갖고 혁신학교를 어떻게 운영할까 머리를 맞대면서 점차 생각을 일치해 나가기 시작했다.
1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최민수 교사는 학기초 가정방문부터 시작했다고 말했다. 요즘대부분 학교들이 가정방문을 하지 않는 추세지만 아이들을 이해하고 부모님과 관계를 맺는데 가정방문이 아주 효과적라는 설명이다. 가정방문은 희망가정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이 학교는 또 학급 운영을 학부모들에게 알리기 위해 학급 SNS(네이버 밴드)를 운영하고 있다. 학부모들이 편리하게 알림장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은 물론 아이들의 사진, 영상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최민수 교사는 “밴드에는 아이들의 교육활동이 여과 없이 공개하고 있어요. 모르는 것에서 오는 불신과 불안을 해소시키는데 밴드의 역할이 상당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줄포초등학교 수업은 어떻게 변화되고 있을까?
먼저 교사간의 수업을 공개했다. 수업은 1학기 내내 공개됐다. 교사들은 수업 공개일이 잡히면 여전히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신경이 쓰이지만 종래 수업공개보다는 훨씬 의미 있는 협의가 이뤄지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또 수업 시간에 말이 많았던 교사도 바꿨다. 김동화 교사는 “아이들이 교과서를 다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주제중심, 내용중심으로 재구성하여 수업을 진행했어요. 아이들이 집중할 수 있고 직접 참여하는 활동 중심으로 수업을 계획하려고 노력했죠”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점차 여유와 생기가 생기더라고 설명했다. 스스로도 여유가 생기니 아이들과 눈 마주치고 이야기할 시간이 많아지면서 이해할 수 있게 됐고, 자연스레 긍정적인 태도로 자신을 반겨주는 아이들이 보였다.
프로젝트 수업도 도입됐다. 신현규 교사는 교사들과 머리를 맞대 주제중심 교과 통합 프로젝트인 ‘우리 집에 놀러와’ 프로젝트를 완성했다고 밝혔다.‘우리 집에 놀러와’ 프로젝트는 외국인을 우리 집에 초대해 식사를 대접해 본다는 가정으로 국어, 사회, 실과, 음악, 창의적 체험활동을 통합하여 총 28차시로 진행했다. 신현규 교사는 “주제 중심 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하니 교과 간의 중복된 내용을 줄이고 꼭 필요한 내용을 배울 수 있어 효과적”이었다고 말했다.
서술형 평가도 도입됐다. 5학년을 맡고 있는 이효희 교사는 “1학기 동안 주요과목의 단원이 끝날 때마다 서술형 평가를 실시했어요. 배운 것을 자신의 언어로 풀어 설명할 수 있는지, 친구들과 협력해 창의적인 산출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자신의 하루를 소중히 여겨 계획하고 노력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등을 평가 대상으로 삼았죠”라고 말했다.
다양한 야외 체험학습도 활발히 전개됐다. 생애 처음으로 혼자서 표를 끊고 버스를 타며 자신감을 얻은 아이들을 보면서 체험학습 효과를 생각하게 됐다는 교사도 있었다.
또 우쿠렐레, 밴드 등 학부모 동아리가 결성돼 저녁마다 활동을 펼쳐지고, 혼자만의 고민이나 불만이 집단지성의 힘으로 해결해 나가고 있다.
혁신학교는 학교장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 최성운 교장은 “지금까지 일방적 지시 위주의 학교에서만 근무해오던 나에게 교사들의 자발적인 헌신, 이를 통한 아이들의 변화는 가장 보람된 일이었다”고 말했다.
이영환 전라북도교육청 장학사는 “부안 줄포초등학교는 한 학기라는 매우 짧은 기간에 상당히 많은 변화를 이뤄냈다. 혁신학교는 학생과 학부모는 물론 교사들의 만족도가 높은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우편배달부 같은 지식의 전달자가 아니라 수업에 아이들의 삶과 생활이 반영되는 나와 우리학교 선생님들의 모습에서, 행복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아이들에게서, 우리 교육의 미래를 볼 수 있어서 참 행복하다” 줄포초 이은영 교사의 말이다.


2026.10.11(일) 18:4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