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지내십니까?

윤수웅 / 전 봉황북초 교장선생님

2013-06-03(월) 14:40
국립광주박물관에 들어서자 윤수웅 전 교장선생님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윤 교장은 현재 국립광주박물관에서 매주 일요일 뮤지엄프렌즈(국립박물관 해설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다.

■ 제 2의 인생을 시작하며

퇴임 후 윤 교장은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중·고등학교 동창회 사무실을 나가면 화투치며 시간을 보내는 친구들이 많았다. ‘화투치면 치매 안걸려 좋다’며 같이 하자는 친구들의 얘기가 그의 귀에는 달갑지 않게 들렸다. 윤 교장은 보람있는 일을 찾아 남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한 첫 번째 활동이 광주의 모 신문사 시민기자였다. 그러다 우연히 신문에 실린 광고를 보았다. 전국 국립박물관의 자원봉사자인 ‘뮤지엄프렌즈’를 모집한다는 내용이었다.

‘아, 이거다’ 윤 교장은 자신에게 딱 맞는 활동이다 싶었다. 그래서 2009년 국립광주박물관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문화 해설 자원봉사는 그에게 큰 보람을 준다.

“학생들을 만나면 교직생활의 연장이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보람을 느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게 사명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제가 지금 국가에서 연금을 받는데, 사실 큰 혜택을 받고 있는 것이잖아요. 근데 제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연금만 받으면 안되겠다 생각했습니다.”

■ 최고령의 영어 학원 수강생이 되다

박물관에는 외국인들이 가끔 찾아온다. 그런데 외국인 해설사가 없을 때는 아무도 외국인에게 다가가지 않는게 그의 눈에 띄었다. 윤 교장은 그걸 보다가 ‘나도 대학까지 영어공부를 했는데…’ 생각하며 말을 걸어봤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는 얘기죠. 용어도 전문적인데다, 문화의 차이가 커서 설명해 줄 수가 없었습니다. 외국인들이 ‘왜 그림에 글씨가 있냐?’고 물어 보는데 참 막막했습니다. 동양화는 ‘시, 서, 화’가 있고, 여백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은데 그것을 영어로는 설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윤 교장은 영어를 배워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들에게 조언을 구해 큰 결심을 하고 영어 학원을 찾았는데, 학원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저희 학원은 기초가 있어야 하는데…”

그는 망설였다. “안그래도 자신이 없는데, 그냥 돌아갈까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왜 배우러 왔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제가 박물관에서 해설을 하는데 외국 사람들에게 잘 하고 싶어서 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상담하던 사람의 태도가 변했다. “아, 그럼 등록하세요. 목적이 있다면 잘 하실겁니다.”

그렇게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그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아침 영어학원을 다닌다. 수업은 아침 8시에 시작하지만, 수업 전후로 어학실에서 혼자서 영어 듣기를 한다. “예습 복습을 하지 않으면 따라 갈 수 없어 힘들다”고 말하는 그는 현재 학원에서 제일 고령자다.

■ 광주교대 1회 졸업생

윤 교장은 1963년 교단에 섰다. 그의 오래된 인사발령통지서가 세월을 말해준다. 광주교대 1회 졸업생인 그는, 졸업 50주년을 맞은 동기들과 매주 월요일 무등산에서 모임을 갖는다. 1회 졸업생이라는 선배로의 부담과 자부심이 그의 마음속에 늘 함께하고 있다.

배우자인 고순희 여사도 담양 봉산초등학교 교장을 역임하고, 지난 2009년 담양동초등학교에서 정년퇴임했다. 박물관에서 함께 봉사활동을 하며 퇴임후에도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윤 교장에게 써준 고향 친구의 시 한편에는 그의 두번째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윤 교장은 “우리 학생들이 문학, 역사, 철학 독서를 많이 해 지성을 갖추었으면 좋겠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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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담당관실 주무관 김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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