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황의 미신(迷信)과 점령군(占領軍)

2022-03-31(목) 19:54
사진=잔혹한 통치자 진왕 정
[신동아방송=조도환 논설위원] 1974년 중국 서안 임동에서는, 날이 가물며 흉작이 계속되자 사람들을 동원해 우물을 파는데, 한 노인의 곡괭이가 흙으로 만든 토용(土俑)을 캐면서, 주변을 더 파내려가자, 2천 년 간이나 땅 속에 숨겨져 있던 진시황의 배총(陪塚)이 드러나게 되는데,

우물 파다 발견된 진시황의 무덤 여산릉(驪산陵)은, 높이 116m, 사방이 각각 600m, 둘레는 2.5km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로, 죽어서도 황제를 그대로 해먹겠다는 욕심에 호위군관과 궁녀, 근위병과 시녀, 병사, 마부, 말 등 그 수가 수 만점이 넘는 등, 어마어마한 평수에 온갖 사치를 부리며, 기괴한 설계의 도굴 방지장치까지 만들었다고 한다.

수양제는 자신만의 사치와 향락을 위한 수많은 토목공사에 백성들이 죽어 나가자, “대륙의 통일 사업에 일부 필부의 희생이 대수냐”라며 통일 사업이라는 핑계라도 댔으나,
진시황은, 자신의 무덤인 여산릉에 80만, 만리장성에 50만, 자신의 여행을 위한 관광지개발과 도로공사에 50만, 아방궁 건축에 100만 명 이상을 동원해 그 중 절반이상을 죽게 만들었고, 공사에 필요한 엄청난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무거운 세금을 부과했으며, 세금을 내지 않으면 그 어떤 핑계도 없이 가차 없이 죽였는데, 점령군으로서 기존의 법 위에 군림하며 아주 잔혹한 통치를 했다고 한다.

중국을 통일한 폭군 진시황은 미신을 숭배했다고도 알려졌는데,
진시황이 중용(重用)한 자들은 모두 옥리(獄吏)로,
형벌로 사람을 죽이는 것으로 위엄을 세우는 것이 그의 통치 방식이라,
이로 인해 죽임을 당한 자들이 워낙 많아, 그로인한 귀신들의 보복을 두려워하게 되면서 도사와 미신에 빠지게 된 것으로,
오래는 살고 싶었는지, 영생을 누리려는 헛된 욕망에, 선인(仙人) 즉, 도사를 신봉해서 집터와 불로초 등 영생에 대한 집착이 특별히 강했다고 한다.

그런 무리들 중 노생이라는 한 도사가 진시황에게 이르기를,
“소신이 영지, 작약, 神蔘을 구하려 했으나 결국은 찾지 못했는데, 도술서에 따르면, 군주가 거처를 비밀리에 해야 영물이 찾아오며, 군주의 거처를 神靈이 알게 되면, 영물은 오지 않을 것이니 폐하의 위치를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않으면(숨어 있으면), 진인은 곧 불로초를 황제께 드릴 것입니다.”라며 불로불사에 대한 욕망을 미신으로 자극하며, 주변인들의 접근을 차단하고선 비선실세 노릇을 하게 된다.

대체로 군주라는 자들은 부귀영화를 누리다 마(魔)가 뻗치면 헛된 영화를 계속 갈구하게 되는데, 이것은 전국시대(戰國時期) 군주들에게 도사들이 수작을 부려 ‘불로장생약’을 믿게 만들어 군주가 미신에 빠지도록 사술로 현혹했기 때문으로, 진시황이 폭군으로 군림하고 헛된 망상에 빠진 것 역시, 도사의 마수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진시황은 말년에, 태양이 궁궐 뜰에 떨어지고 그 태양을 붉은 옷의 동자가 가져가는 꿈을 꾸자, 붉은 옷 입은 동자에게 나라를 빼앗길 것이라는 점쟁이의 말에 따라 그‘놈’을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나지만, 점쟁이의 점괘와는 달리,
미신에 빠져 선정은 하나도 베풀지 않았고,
귀신만 무서워해 미신에 의존하면서,
점령군으로 살육만 일삼던 진시황은 결국 길 위에서 객사하게 된다.


진시황의 이야기는 한 무제 당시 태사령을 지냈던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데, 역사를 소재로 한 사기는 대단히 잘 지은 소설이지만, 우리의 근대사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과거 현재 할 것 없이 역사는 반복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사교육이 필요한 이유다.


조도환 논설위원 smspd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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