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비록(懲毖錄)과 쇄미록(瑣尾錄), 그리고 관함식

2022-08-27(토) 12:24
사진=영국 이코노미스트의 삽화, 007의 나라답게 언론도 정보에 밝은 것으로 보인다.

[신동아방송=조도환 논설위원] 시경(詩經) 소비편(小毖篇)의 "지난 잘못을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予其懲而毖後患)"는 구절에서 따왔다는 징비록은, 유성룡이 전쟁의 배경과 전투상황, 조선과 왜구, 명과의 외교관계와 전쟁으로 피폐해진 백성들의 생활상 등, 임진왜란을 총체적으로 분석하고 기록한 책으로 드라마 등의 소재가 되기도 했었다.

저자인 유성룡은 전쟁 전후 주요 보직을 맡았기에, 당시 조정과 군벌들이 주고받았던 문서들을 확보할 수 있어 징비록을 집필할 수 있었다고 한다.

반면, 쇄미록은 조선시대 선비 오희문(吳希文)이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피난길에서 보낸 9년 3개월간을 기록한 피난일기로, 제목은 징비록처럼 시경의 ‘쇄혜미혜 유리지자(瑣兮尾兮 遊離之子)’라는 구절에서 따왔는데, “무엇보다 누구보다 초라한 것은 여기저기 객지를 떠도는 사람”이란 뜻이라고 한다.

오희문은 쇄미록에 피난민들이 마주한 전쟁의 참상을 자세히 기록했는데, 임금이 도망가고 국가기능이 사라진 조선에서, 각자도생하는 백성들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과, 부녀자를 윤간하고 재미로 사람들을 죽이는, 침략자 왜구들의 잔인하고 악랄한 실상을 그대로 전하고 있다.

아래는 그 중 일부로,
“5월 3일, 얼굴이 출중한 여인들은 왜적에게 끌려갔는데 거부하면 바로 죽였고, 성주에 사는 선비 아내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피난을 가다 왜적에게 붙잡혀 모욕을 당했는데, 너무 많은 왜적에게 간음당하여 아래가 너무 많이 부어 걸어 다니지 못했고”(...)

“왜적들은 시도 때도 없이 산과 들에 사격을 가했는데, 총소리에 놀란 어린아이들이 비명을 지르는 것을 기다려 사내아이들은 죽였는데”(...)

“5월 2일, 옥천과 금산에는 왜적이 달아난 마을마다 비참하게 죽은 아녀자들이 나무에 걸려있었다. 대부분 알몸이었고 뼈가 드러날 정도로 학대당한 이들도 있어 하늘을 분노케 했다.”

“왜적이 공격한 한 고을은 마을 전체가 불에 타버려서 비가 오는데도 한집에서 자야 했으며, 마을 전체가 병을 앓아 전멸하고 말았다.“(쇄미록)

징비록이나 쇄미록은, 왜구를 믿지 말 것이며 잔인하고 신의 없는 족속들이니 늘 경계하고 준비해서 침략에 대비하라는 것이었음에도, 왜란이후에도 조선은 당파싸움에 매진하다 결국은 경술국치, 또 다시 왜구들에게 침략당하며 선조들의 걱정을 현실로 만들게 된다.


당선인 시절부터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매달리고 있는 尹통은, 일본의 초청을 수락해 관함식과 수색구조훈련도 참가하는 방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관함식은, 군 통수권자가 직접 바다에 나가 함대와 장병을 검열하는 해군사열 의식으로, 국제 관함식은 각국의 해군을 초청해서 벌이는 대표적인 '군사외교' 행사이기는 하나,
일본은 ‘초계기 사건’을 다시 소환해서는, 尹정부가 사과하지 않으면 관계개선은 없을 것이라고 尹대통령의 사과를 끈질기게 종용하는 한편으론, 한국 군함이 이순신장군의 수자기를 달고 올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한다.

(윤 대통령 "한·일관계 빠르게 발전시킬 것" 광복절 경축사
“日은 힘을 합쳐 나아가야 하는 이웃"
2022. 08. 15. 한겨레)

(일본 산케이 "尹 사죄하지 않으면, 한일관계 개선 없어"
2022.08.21. 매일경제)

(日도 韓해군 관함식 초청 부정적…"이순신 깃발 달고 오게 해선 안 돼"
자민당 간부, 당 회의서 "초계기 사건 해결 없인 안 돼"
국방부, 침략전쟁 정당화 상징 '욱일기' 논란에 참가 고심
2022-08-25 이데일리)

("윤 대통령, 기본부터 배워라".. 영국 이코노미스트의 '일침‘
인사 검증 실패, 사적 채용 논란 등 언급 "기본 정치 스킬조차 못 갖춘 아마추어" "규칙을 깨기 전에 먼저 배워야" 조언
2022.08.26. 한국일보)

일본에서 열리는 관함식에 한국의 참가가 논란이 되는 것은, 해상자위대기는 일제가 침략전쟁 당시 사용했던 ‘전범기’로, 관례상 관함식 참가국들은 주최국 기에 예의를 차려야하기에, 일제강점기에 대한 사과와 배·보상은 없이 버젓이 ‘전범기’를 내건 일본의 억지를 인정하면서 고개 숙여 들어가는 형국이 되기 때문이다.

많은 역사학자들이 일본과의 관계는 前정부 수준으로 Yuji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내놓는 것은, 소·부·장전쟁의 충격을 극복하고 克日을 눈앞에 둔 마당에, 미국이 의도하는 대중국, 대러시아 포위정책에 일본과 화해와 협력이란 명분으로 휩쓸릴 경우, 그 타격은 수십, 수백억 재산과 수십 채 집을 갖고 있는 관료들과 정치인들이 아닌, 일반 국민들이 받게 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징비록과 쇄미록의 교훈은,
지난 잘못을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하고 나라는 팔지 말라는 것이다.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겠습니다.” 이런 기개가 필요한 상황에서,
고개 숙일 필요가 없는 일본에 머리 조아리려는 이유가 무엇인가?
日國의 장관이 너무 많은 정권이다.

조도환 논설위원 smspd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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