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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투쟁(Mein Kampf)

2022-01-03(월) 20:25
사진=극빈층은 자유가 뭔지 모른다는 발언이 나온 전북대 타운홀미팅 현장. 공동취재단 갈무리
[신동아방송=조도환 논설위원] 1889년 4월 20일 오스트리아의 국경도시 브라우니에서 출생한 히틀러는, 고급관리가 되기를 바라던 아버지의 희망과는 달리 학창시절부터 재능을 보였던 화가로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실업학교 시절 부친 사망한 후 모친에게서 미대 진학을 허락받지만, 미대 진학에 실패하고 어머니마저 사망하자, 그는 자신의 삶에서 가장 힘들었던 ‘비인’ 시절을 회고한다.

"이 사치한 도시의 명성 속에서 나는 5년간의 빈곤과 비참한 시절을 지냈다. 나는 우선 보조노동자가 되었고 화공노릇을 하며 빵을 위해 일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배고픔은 당시 언제든지 나에게서 떠나지 않는 유일한 내 친구였으며 모든 일에 충실히 나를 뒤따라오는 존재였다. " (나의투쟁, '비인시절의 수업과 고난’)

그 후 히틀러는 ‘국가사회주의 독일노동자당’에 가입, 55번째 당원이 되어 뮌헨에서 무장폭동을 시도하지만, 실패하고 '국가반역죄'로 5년형을 받는 등 청년기의 히틀러는 시련의 역속이었지만, 그는 점차 발전(?)하고 있었다.

반역죄로 수감 된지 9개월 만에 보석으로 풀려나면서, '폭력혁명'노선에서 '의회운동중심의 합법주의 대중운동'으로 노선을 전환하는데, 이는 1차 세계대전 후 독일민중의 요구를 정확히 포착한 것으로, 당시 독일은 ‘혁명’보다는 ‘빵’과 몰락한 독일을 부정할 ‘이데올로기’가 필요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후 괴벨스와 ‘나치스’를 재건한 히틀러는 탁월한 대중선동으로, 1933년 1월 독일 수상이 되면서 반대파를 무자비하게 숙청하며 절대 권력을 손에 넣으면서 1934년 총통의 자리에 오른 히틀러는, 5만 여명의 친위대 조직을 시작으로 40만 명의 돌격대, 360만 여명의 유겐트, 나치婦人團 등 대대적인 군비확장으로 총통 취임 4년 만인 1938년,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2차 세계대전은 막이 오르고, 독일민족 우월주의라는 광기와 함께 ‘인종 대학살’이라는 인류 범죄가 시작된다.


(TK 찾은 윤석열 폭주 “대선도 필요 없다, 곱게 정권 내놓고 물러가야”
2021-12-30 한겨레)

("노동자 편"이라는 윤석열, 최저임금 상승엔 노동조합 탓
[관훈클럽 토론회] "후퇴 불가능"이라면서도 부정적...
21.12.15 오마이뉴스)

(주 120시간 노동’ 말했던 尹 “최저임금·52시간제 후퇴 불가능”
2021.12.14. 헤럴드경제)

(“배부른 자들만 자유를 안다”는 비뚤어진 자유론
윤 후보, 전북대서, “자유의 본질은 일정 수준의 교육과 기본적인 경제 역량이 있어야만 존재, 교육과 경제의 기초를 만들어주는 게 자유의 필수적인 조건, 극빈층과 못 배운 사람들은 자유 뭔지 몰라”
2022-01-02 한겨레)

(2021년 12월 29일
- "독재정부는 국민들 경제는 확실히 살렸다"
- "대선도 필요 없고 곱게 정권 내놔라"
2021년 12월 28일
- "한국 청년 대부분은 중국을 싫어한다.“
2021년 12월 22일
- "극빈하고 배운 게 없으면 자유가 뭔지도 몰라"
- "더 발전하면 앱으로 기업 정보 얻을 수 있어“
2021년 12월 15일
- "겸임교수는 시간강사고, 시간강사는 자료 보고 뽑는 게 아니다“
2021년 12월 14일
- "정부 맡으면 모든 정보와 수사라인 동원해 인사검증 하겠다.“ 민중의 소리)


히틀러가 단기간에 독일을 장악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의 저서 ‘나의 투쟁’에 대한 독일인들의 맹목적 지지도 있었지만, 그가 ‘조직관리 뛰어난 CEO’라는 것이 더 큰 배경으로, 독일 노동자당에서 이미 히틀러는 뛰어난 리더십과 탁월한 언변으로 이른 시간에 독일 노동자당 당수가 될 정도로 훌륭한 ‘CEO’ 자질을 보였다고 한다.

당시 '인간 아돌프 히틀러'에 대한 독일 내·외의 이미지는 금주, 금연, 금욕, 채식주의자이며 동물을 사랑하는 '금욕적이고 도덕적인 지도자'였다고 하는데,

그러나 히틀러는 계급투쟁이 아닌 인종투쟁을 주창하며, 독일인만이 우월한 민족이고, 근대 유럽의 자본을 대부분 장악한 유대인에 특히 모질어서 600만 이상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르게 된다.


“없는 사람은 부정식품도 먹고, 가난한 자들은 자유가 뭔지도 모르고, 독재 정부가 경제는 확실히 살려놨고, 최저시급보다 적게 받고도 일 할 생각해야 하고, 사과는 ‘남편사과’ ‘개 사과’가 최고이며, 대선도 필요 없고 정권 곱게 내주고 물러나라.”

인종으로 민족을 나누고 전쟁을 벌인 히틀러는 1945년 4월 30일, 베를린 총통관저 지하실에서 권총자살로, ‘나의 투쟁’을 남기고 56년에 걸친 영욕의 삶을 마감하게 된다.

지도자를 자처하려는 자가 ‘나의 투쟁’ 대상을 국민으로 삼고 직업과 교육수준, 富의 유무 등으로 편 갈라 정쟁의 수단으로 삼아선 안 되는 것은,
‘나라가 존재하기에 국민이 있는 것이 아닌,
국민이 존재하기에 국가가 있기 때문’으로
칼잡이출신 다운 투쟁목표라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조직관리 뛰어난 CEO’라는 평의 히틀러도 노선을 잘못 잡아 실패했는데,
하물며.......
국민을 계급으로 나누고 국민을 투쟁대상으로 삼으면 무엇이 남을지는 明若觀火한 일이다.



#한국인성교육연합
조도환 논설위원 smspd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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