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아방송=조도환 논설위원] 금의환향이라고도 하는 금의야행은 초한 쟁패전에서 자영을 목 베어 죽인 후, 관중을 먼저 접수한 유방을 한중으로 보내는 등 마음 내키는 대로 논공행상을 한 항우에게, “패자가 됐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다면 그것은 비단옷 입고 밤길 걷기나 마찬가지입니다”라며, 관중을 떠나 동쪽 작은 마을인 고향 팽성에 가야 사람들이 알아줄 것이라고 항우를 회유한 장자방에서 비롯된 고사성어다.
관중은 춘추시대 이전부터 한족들이 터를 잡고 살았던 사통팔달의 요충지로, 전략가들은 물론이고 병법을 조금이라도 공부한 자라면 관중을 차지해야 전국을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은 상식중의 상식이었던 시대였음에도,
장량의 계략에 속은 항우는 함양성에 불을 질러 황폐화시키고는 팽성에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여, 수많은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집대로 집무실을 이전하게 된다.
장량은 관중에 먼저 입성한 유방이 궁녀를 탐하고 재물을 약탈하는 등 주색잡기에 몰두하자, 유방에게 “주색잡기 하려고 목숨을 걸고 싸운 것이 아니요, 당장 모든 것을 원위치 시키지 않으면 이 싸움에서 손 떼겠소”라고 꾸짖자 유방은 그의 말대로 조치를 하게 된다.
유방의 가장 큰 장점은 ‘상대의 말을 잘 들었던 점’이라는 평가가 많은 것은, 상대의 의견이 옳다고 판단되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따르면서, “좋은 약은 입에 쓰지만 병을 낫게 하고, 좋은 말은 귀에 거슬리지만 행하는 것이 이롭다.” 라고 했다고 한다. ‘양약고구이어병, 충언역이이어행(良藥苦口利於病 忠言逆耳利於行)’
그러면서 “오불여 자방(吾不如 子房), 오불여 소하(吾不如 蕭何), 오불여 한신(吾不如 韓信), 나는 이 서한삼걸보다는 못하지만 그들을 알아보고 기용하는 능력으로 천하를 차지하게 된 것이고, 항우는 범증(范增) 한 명도 제대로 쓰지 못했으니, 이것이 내가 그를 이긴 이유다.”라고 덧붙인다.
유방은 자신의 주특기인 주색잡기를 지적당하자 바로 고쳤으나, 자신의 부하들을 못 믿고 의심을 많이 한 항우는, 막대한 세금도 필요하고 전략적 가치도 없는 팽성행을 반대하는 주변인들을 죄다 죽이며 고집을 관철하게 된다.
결과론이지만 유방은 관중을 차지하면서 400년 한나라의 기초를 다졌고, 항우는 팽성으로 집무실을 옮기면서 전략적 우위를 잃어버려 초패왕의 기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반드시 그렇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귀에 거슬리는 충언을 항우 방식으로 처리한 지도자의 말로는 대부분의 경우 비극으로 끝나곤 한다.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잘못을 반복 하지 않는다.
관중은 춘추시대 이전부터 한족들이 터를 잡고 살았던 사통팔달의 요충지로, 전략가들은 물론이고 병법을 조금이라도 공부한 자라면 관중을 차지해야 전국을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은 상식중의 상식이었던 시대였음에도,
장량의 계략에 속은 항우는 함양성에 불을 질러 황폐화시키고는 팽성에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여, 수많은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집대로 집무실을 이전하게 된다.
장량은 관중에 먼저 입성한 유방이 궁녀를 탐하고 재물을 약탈하는 등 주색잡기에 몰두하자, 유방에게 “주색잡기 하려고 목숨을 걸고 싸운 것이 아니요, 당장 모든 것을 원위치 시키지 않으면 이 싸움에서 손 떼겠소”라고 꾸짖자 유방은 그의 말대로 조치를 하게 된다.
유방의 가장 큰 장점은 ‘상대의 말을 잘 들었던 점’이라는 평가가 많은 것은, 상대의 의견이 옳다고 판단되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따르면서, “좋은 약은 입에 쓰지만 병을 낫게 하고, 좋은 말은 귀에 거슬리지만 행하는 것이 이롭다.” 라고 했다고 한다. ‘양약고구이어병, 충언역이이어행(良藥苦口利於病 忠言逆耳利於行)’
그러면서 “오불여 자방(吾不如 子房), 오불여 소하(吾不如 蕭何), 오불여 한신(吾不如 韓信), 나는 이 서한삼걸보다는 못하지만 그들을 알아보고 기용하는 능력으로 천하를 차지하게 된 것이고, 항우는 범증(范增) 한 명도 제대로 쓰지 못했으니, 이것이 내가 그를 이긴 이유다.”라고 덧붙인다.
유방은 자신의 주특기인 주색잡기를 지적당하자 바로 고쳤으나, 자신의 부하들을 못 믿고 의심을 많이 한 항우는, 막대한 세금도 필요하고 전략적 가치도 없는 팽성행을 반대하는 주변인들을 죄다 죽이며 고집을 관철하게 된다.
결과론이지만 유방은 관중을 차지하면서 400년 한나라의 기초를 다졌고, 항우는 팽성으로 집무실을 옮기면서 전략적 우위를 잃어버려 초패왕의 기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반드시 그렇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귀에 거슬리는 충언을 항우 방식으로 처리한 지도자의 말로는 대부분의 경우 비극으로 끝나곤 한다.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잘못을 반복 하지 않는다.
조도환 논설위원 smspd1@naver.com


2026.10.06(화) 18:34

























































